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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두달의 망설임 끝에 탄생했다"

브랜드 네이미스트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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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
1955년 출생/홍익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학 석사/ 2003년 홍콩디자인협회 아시아 디자인상/ 1977년 현대양행 기획실 디자이너/ 1986년 브랜드 디자인 전문 크로스포인트 창립/ 1998~2008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2007 크로스포인트 뉴욕지사 설립/ 2010 한국스타일박람회(Korea, the style) 예술감독

‘처음처럼’ ‘참이슬’ ‘트롬’ ‘힐스테이트’ ‘이니스프리’ 등 낯익은 브랜드를 탄생시킨 주인공.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국내 대표적인 브랜드 네이미스트.

인터뷰 전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에 대해 기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몇번의 통화를 나누는 동안, 수화기 넘어 앙칼지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가진 이 사람이 궁금해졌다.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국내 대표적인 브랜드 디자이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로부터, 열정과 확신으로 얻은 성공스토리와 함께 수많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낸 그의 ‘네이밍 철학’을 들어봤다.

돈 받고 이름 만든 최초의 브랜드

그는 말하자면 90년대 초반, 국내에서는 ‘돈 받고’ 이름을 만든 첫번째 브랜드 디자이너였다. 여성의류 브랜드 ‘베스띠벨리’. 그의 첫 작품이다. 브랜드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했던 그때, 비즈니스 파트너로 거래를 이끌어 낸 비결이 무엇일까.

조금은 거창한 철학을 기대했는데 그가 내놓은 답변은 의외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제가 크로스포인트로 독립을 했던 게 30살 무렵이에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애인데, 제가 뭘 알고 했겠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물어본 적이 있긴 한데 제가 옷을 잘 입어서 저를 선택했다고 하더라고요.”

‘옷을 잘 입어서’라니. 이 대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기자의 얼굴에 스쳤나보다. 손 대표가 얼른 덧붙인다.

“옷 한벌 입는 데서부터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본 것 같아요. 브랜드라는 건 사실 굉장히 함축적인 언어에요. 짧은 단어 하나에 브랜드의 가치과 콘셉트, 앞으로의 방향성이 담겨 있어야 하죠. 이 모든 걸 꿰뚫어 보려면 무엇보다 감각이 있어야 하고, 그걸 제 옷차림에서 발견한 거죠.”

그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 말을 이었다. 대기업의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꾸리는 회사.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대적이었다.

당시에는 그 역시도 브랜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막연하게 감은 잡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철학은 없었다고 했다. 믿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이었다. 그런 그의 작업이 자연스럽게 브랜드 네이밍까지 이어진 데에는 평소 독서를 즐기는 그의 관심사가 크게 작용을 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회사의 CI 디자인을 담당했던 적이 많아요. 그러니 디자인 작업을 할 때마다 ‘이 회사의 이름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런 이름이 더 좋을 텐데’라는 궁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표현된 단어 하나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름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게 결국 고객들에게는 첫인상이니까. 그런 평소의 고민이 남과 다른 일을 찾고 있던 당시 제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진거죠.”

그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브랜드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브랜드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매번 새롭게 깨닫는다고 했다. 실제로 베스띠벨리만 하더라도 아직도 여성의류 브랜드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신영복 교수 저서의 한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처음처럼’은 지금까지 18억병이 넘는 판매량을 올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도 몇천만원을 받고 일주일 만에 이름이랑 로고까지 브랜딩 작업을 마쳤어요. 이름 하나 만드는데 뭐 그리 비싼 값을 받느냐 하지만, 실제로 그 이름이 제품의 가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요. 브랜드의 중요성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않잖아요. 처음처럼만 하더라도 롯데주류에서 저한테 브랜딩 작업을 맡기는 데 두달을 망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이름 덕분에 투자한 돈의 몇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을 거둔 셈 아닌가요?”

소비자의 언어를 통역하다

그가 서재에서 책 한권을 꺼내 보여준다. 그래픽디자인협회 AIGA에서 발행하는 잡지로 우수브랜드 디자인을 선정해 싣는다고 소개한다. 그중 한국 브랜드가 두개나 선정됐다고 말하는 그의 억양이 살짝 흥분된 듯 올라가 있다. 이 잡지에 소개된 토다코사의 메이크업 브랜드 ‘투클포스쿨’을 비롯해 최근 대한제분이 출자한 동물병원 ‘이리온’ 역시 그의 회사에서 작업한 것들이다.

투클포스쿨도 마찬가지다. 메이크업 브랜드 투클포스쿨을 주로 찾는 이들은 대부분 여고생. 학교에서는 학생이더라도 학교 밖에서는 립글로스를 바르며 ‘여자’로 보이길 원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이름을 찾던 중,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발랄한 ‘투클포스쿨’을 생각해 냈다. 그런 점에서 인정을 받아 AIGA에까지 ‘우수 브랜드’로 선정이 됐다는 설명이다.

‘일주일 만에’ 혹은 ‘한달 만에’ 뚝딱 브랜드 이름을 만들어낸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매번 제품과 딱 떨어지는 히트 상품의 이름을 만들어내는 비결이 궁금해 진다.

“소비자의 언어를 알아야죠.” 단순 명료한 그의 정답. 그러나 ‘소비자의 언어’라는 게 도대체 막연하게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손 대표는 브랜드 네이밍이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언어를 전달해주는 ‘통역자’ 혹은 ‘번역자’나 마찬가지 역할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생산자의 언어와 소비자의 언어는 상당히 달라요.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이 점을 눈치채지 못해요.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만 이름을 붙이고 소비자에게 이를전달하려고 하니 통할 수 있나요. 외국어를 잘 배우려면 일단 관심이 있어야 하잖아요. 제품을 팔고자 하는 타깃 소비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원하는지 관찰을 해야 그들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거죠.”

이를 위해 그는 집에 들어가면 몇 시간은 드라마며 개그프로며 TV 속 인기 방송프로그램을 섭렵한다고 한다. 인터뷰 중에도 <나가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요즘 사람들의 정서를 알 수 있고, 책을 읽으면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핵심을 읽는다고 했다.

“지금은 진열대에 놓여 있는 수많은 상품, 혹은 TV에 끊임없이 광고되는 수많은 제품 중에서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선택을 내려요. 그래서 직관을 움직이는 브랜드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거죠. 발음이 쉬워야 하고, 제품을 잘 드러내야 하고, 영어표기가 쉬우면 더 좋고. 좋은 이름의 법칙은 많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이거에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름. 그건 늘 사람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해 늘깨어있을 때, 생생한 감각이 살아있어야 얻을 수 있는 거죠.”